할머니가 입원하시고 3주만에 처음을 병실에 찾았다.
격리병동의 무겁고 두터운 문 너머에서 전화로 면회를 신청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자 할머니가 걸어오셨다.
가까이서 본 할머니는 나무토막같이 말랐다.
고동색의 피부가 깡마른 뼈에 살조각 하나없이 달라붙어서 몸의 핏줄들이 작은 부분까지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할머니에게 너무 큰 환자복 몸 때문에 그렇잖아도 깡마른 몸이 더없이 안쓰러워보였다.
할머니는 미인이셨다. 오똑하고 바르게 뻗은 코와 깊고 커다란 눈, 작고 선이 고운 얼굴. 어릴때는 너무 무서워서 알지못했지만 작고 동그란 어깨도. 너무 말라서 볼품없지만 골격자체는 여전히 아름다운 작은 몸은,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은 자신의 무게가 부담스러워 작게 떨고 있었다. 나는 그게 슬펐다.
나는 할머니를 꼭 안아드리고싶었지만, 할머니의 몸이 바스러질까봐 그러지도 못했다. 난 할머니의 손조차 잡아드릴 수 없었다. 내 손은 할머니에게 너무 무거웠다.
나는 엄마와 너무나 꼭 닮은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슬퍼졌다. 미래의 엄마가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거기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미래의 나도 거기 있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강한 여성이었다. 시집 간 딸에게 보고싶다는 한 통의 전화도 없으셨고, 가끔 찾아뵐 때도 오랜만에 보는 사위를 향해 "왔는가."정도의 말밖에 하지 않으셨다. 흔한 웃음이나 잔소리도 없이 묵묵하고 정확하게 해야 할 일과 할 도리만 하시고 남는 시간은 안방에서 책을 읽으셨다.
6남매를 키운 건 외할아버지셨다. 엄마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언제나 '일하는 등'이었고, 엄마는 정없고 냉정하고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할머니가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억세고, 강단있고, 현명한 할머니가 저렇게 약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건 엄마에게도 내게도 고역이었다. 나는 옛날처럼 지독하게 말을 듣지 않는 나를 번쩍 들어 강물에 던져버렸던 그 할머니가 그리워졌다.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고 있으려니 할머니가 주신 요쿠르트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빨때를 물고 힘껏 빠니 목에서 올라오던 뜨거운 것이 조금은 내려가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처음보다 많이 좋아지셨다고 한다. 나를 데려가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할만큼 처음의 할머지는 절망적이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을 놓으셨고, 어린애처럼 말도 안되는 투정을 부리고 고집을 피우셨다고 한다. 병실까지 걸어가지 못해서 의식을 잃고 들것에 실려가시던 할머니를 격리병동에 두고 온 날 엄마는 많이 울었다.
오늘의 할머니는 깡마른 몸을 곧게 세우고 바른 자세로 앉아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됐다. 전화로 일요일에 오겠다는 이모에게 "여기오면 성을 낼거다. 전화로 네 목소릴 들었으니 얼굴본거나 진배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할머니를 보고, 그리고 손주들 보고싶지 않냐고...진호와 은영이를 데려올까를 여쭙는 아빠에게 그 전까지 시종일관 퇴원을 요구하시던 할머니가 "어찌 그러는가. 차라리 이곳에서 평생 나가지 않는 게 낫지."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를 보고 난 그 작고 까만 육체가 가지는 정신력에 탄복하면서 한편 그 강인한 정신을 한없이 무력하고 나약하게 만드는 세월의 힘과 육신의 한계에 두려움을 느꼈다.
집에 돌아와서 왠일인지 나는 많이 아팠다. 걷지도 못할만큼 아파서 저녁을 거르고 계속 누워있으면서 나는 계속 몸을 떠시던 할머니와 할머니를 어루만지던 엄마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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