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에 이어 할아버지를 보냈다. 넓지 못한 인간관계에, 다른 이에게 관심두지 않고 살아온 인생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끊임없이 죽어갔지만 나는 장례식장 한 번 가보지 않고 30년을 살았다. 그래서 죽음은, 그저 막연한 개념이었다. 생의 마감. 명확한 이별. 내가 알고, 사랑하고, 미워해 온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낯설고 힘겹고 슬펐지만 의외로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냥 이전처럼 살고 있다. 영화도 보고 티비도 보고 책도 보고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 가끔씩 마음 구석에서 먹먹함이 치밀어 오르면 가만히 한숨 한 번 내쉬고 다시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던지 채널을 돌린다. 그럼 다시 일상이다. 어쩌면 아직도 실감을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방으로  아직도 할아버지가 베란다 소파에 앉아 화초를 보면서 담배를 피우고 계신 것 같아 오른쪽을 돌아본다. 엄마는 여전히 끼니가 돌아오면 밥상을 차려야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하다.할아버지가 쓰던 서랍장 하나를 없애고, 유품을 정리하고 지내시던 방에 도배를 하고 이제 그 방을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 방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는 있던 사람의 흔적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한 사람을 지우는 일은 그 사람과 함께 하면서 몸에 배여온 오래된 습관을 지우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허하고 먹먹한 감정이 떠오르는 간격은 시나브로 멀어지고 있다. 언젠가는 그 사람이 없는 것이 당연한, 그게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게 남은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이다. 

죽음의 가장 큰 미덕은 용서다. 두려워하고 미워했던 마음들, 그리고 그 마음들 때문에 스스로를 미워하고 슬퍼했던 시간들을 하루씩 하루씩 용서한다. 사랑하면 더욱 힘들어지기에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미워했던 마음들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그래도 내게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나보다 더 고단한 삶을 살았던 불쌍한 사람이라고. 강해보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사실을 약한 사람이었다고, 그러나 누구에게도 그걸 내보이기 싫어 외로운 사람이었다고. 내가 조금 더 사랑했더라면, 힘겨워도 조금 더 사랑했더라면 어쩌면 지금 내 마음은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후회하면서 잊어간다.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말은 마음과 몸으로 엮였던 사람에게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이다. 그 사람이 지금은 없다면 더욱 할 수 없는 말이다. 없는 사람과는 싸울 수 없고, 싸울 수 없으니 화해할 수 없다. 화해할 수 없는 사람을 기억하는 건 아픈 일이다. 그런 사람을 기억하는 건 마음을 부순다. 그리고 마음과 몸으로 엮이지 않았던 사람은 기억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이 거의 다 잊혀져 희미해지면 그 기억의 남은 조각들은 다 행복했던 것이길 바란다.

안녕 :: 2010/04/19 13:37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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