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진주에서 소문난 미인이었다. 소심하고 사람 잘 못만나는 성격에 친구가 소개해 준 아빠를 만나 철없을 때 결혼하지만 않았어도 얼굴만 팔아먹고도 살 정도의 이쁜이.
근데 와사풍이 두 번 왔다. 처음은 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시부모 눈치보여서 완치도 못하고 이만하면 됐다시길래 그냥 살았다. 나 대학 졸업하고 한 번 더 왔는데 이젠 병원에서 완치가 안된단다. 눈 감는 것도 미묘하게 힘들고, 사람들 앞에 웃는 것도 꺼려져 대인기피증이 생겨 집에만 있었다. 그 다음부턴 친구들도 우리집에 부르지 못했다.
원래 소심한 성격에 우울증까지 왔다. 우울증의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아무리 가족들이 옆에서 사랑한다 말해주고, 재잘거려줘도 우울증은 심해졌다. 우울은 전염된다. 누구도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기운내라, 긴 병에 효자 없다, 사랑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우리가 행복하다, 그 중 어떤 말도 소용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울증은 더 심해졌다. 무속신앙을 좋아하는 숙모는 할아버지 귀신이 엄마한테 붙으려고 한다 그랬다. 나는 종교도 귀신도 믿지 않지만 엄마는 믿었다. 살아있을 때도 부려먹기만 하던 영감, 죽어서도 엄마한테 빌어먹으려 하는 거 가만있냐며 엄마가 정신차려서 얼른 내쫓으라 그랬지만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했던 할아버지가 제일 만만히 보던 엄마는 그냥 계속 무서워하고 어두워만 갔다.
하루 중 반은 수면제에 취해 자고, 하루 중 여섯시간은 우울증약을 먹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버티고, 하루 중 다섯 시간은 슬퍼하다가 한 시간 정도 이모들이랑 통화할 때만 잠시 웃었다. 아마, 웃는 척 하는 것이겠지. 숨이 막혔다. 우린 우리대로 살아야했다. 5년이 넘도록 계속되는 엄마의 우울을 감당하긴 내 자신의 우울과 외로움조차 감당하기 힘든 나약한 인간이었다. 나는 도망쳤다. 도망쳐서 전화로 엄마, 힘내라. 사랑한다. 꼭두각시처럼 그런 말만 했다.
오늘 동생이 성형외과란 곳에 갔다. 내 동생은 코가 컴플렉스다. 코는 높지만 콧볼이 좁아서 성형에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엄마랑 나는 귀족성형한 것 같은 코라고 돈 안들이고 얼마냐 좋냐 말하곤 했지만 필러라도 맞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의사가 동생보다 엄마가 문제랬다. 눈근육이 너무 쳐져서 몇 년 안에 눈에 진물이 생기고 눈병이 날 것 같다 했단다. 수술하는데 백만원이 든단다. 듣고 있다가 '엄마, 의사한테 혹시 엄마 와사풍와서 생긴 근육이상 다 고칠 수 있나 물어봐. 내가 돈은 줄게.'했더니 엄마가 웃는다. 웃는 척 하는게 아니라 진짜 웃는 거 같아서 '좋아?'했더니 '나 이뻐진다는데 왜 안좋겠어?'그런다. 왈칵, 눈물이 났다.
너무 오랫동안 엄마가 우울해서 나는 그 시작이 어디서부터인지도 잊었다. 원래 쾌활한 성격은 아니지만 힘들어도 강단있고 우아했던 엄마는 두번째 풍이 온 뒤에 더 우울했었는데 우린 그걸 계속 마음의 문제로만 몰고갔다. 엄마때문에 답답해, 왜 그렇게 마음이 약해졌는지 모르겠어, 우리도 지쳐. 동생이랑 전화하면 그런 얘기를 하곤 했다. 절대 그러지 않아야지, 하고 살아왔지만 나조차 엄마라는 이름에 가린 여자를 잊고 살았다. 엄마도 여자다. 그 단순한 한 마디를.
여자다. 그것도 예쁘다는 소리만 듣고 자랐다. 나도 동생도 어디가서 엄마보다 예쁘단 소리를 한번도 못들었다. 나이가 오십이 넘어도 화장기 없는 하얀 피부에 모공자국조차 없는 엄마는 타고난 미인이었다. 딸자식들 앞에서도 옷을 갈아입을 때면 등을 돌리고, 그조차도 여고생 체육복 갈아입을 때 마냥 조심스러워하는 진짜 여자였다. 그랬던 여자가 웃을 때마다 일그러지는 얼굴에 웃는 것도 삼가고, 먹을 때 비뚤어지는 입에 식당가서도 구석자리를 찾고, 다른 사람 앞에서 숫자 9랑 6을 발음하기 싫어 종이에 써서 내는 걸 보면서 왜 우리는 그게 마음의 병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왜 양희은은 저렇게 밝게 웃는데 왜 엄마는 못하냐고 다그쳤을까.
안다. 외모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외모지상주의는 바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얼굴을 매일 대하고 사는 사람이 그 외모로 인해 고통받는다면 성형은 그 사람의 인생을 구해줄 수 있다. 시술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엄마의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게 가능하다면 진작 와사풍을 치료해주던 병원에서 시술을 권했겠지. 하지만 하다가 안된다고 하더라도, 단 몇일만이라도 엄마가 원하는 엄마의 얼굴로 돌아올 수 있다면, 아니..그것보다 그게 엄마에게 조금의 희망이라도 줄 수 있다면 해주고싶다.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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