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동의한 게 하나도 없었소."
"그렇습니다."
"전부 의견이 달랐소."
"이유를 아십니까?"
"난 겁 많고, 약자를 동정하고, 진보주의에 인텔리 그리고 공산당이기 때문이네."
"그리고 저는 권총을 갖고 다니는 개자식 같은 백인 노동자죠."
"맞는 말이요."
"동의하는 것도 있군요."
"선거 자금 개혁에도 동의하죠?"
"네. 각하"
[중략]
"맥스, 내 후보를 지지할거죠?"
"그럼 제게 돌아오는건요?"
"대통령의 진심어린 감사요."
"정답입니다. 각하"

[웨스트 윙. 시즌 1x12 중]



웨스트 윙에 완벽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자주 실수하고 그 실수를 먹이로 삼는 적에게 화내고 연애에 서툴고 가정사에 실패했다. 알콜과 마약문제를 겪기도 하고 딸과 부하직원의 데이트를 탐탁찮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신념을 가지고 있고 국가와 국민에 헌신한다. 적들은 밉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손을 잡기도 하고 적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면 (화는 나지만)수용한다. 때론 중상모략같은 야비한 수를 쓰기도 하지만 좋은 정책(혹은 좋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기 위한 방안의 일부다.  도덕적 실책은 정치적 약점이 되고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그 약점을 이용하는데 거리낌은 없지만 그것조차 자신들의 정책을 위해 사용한다. 이 모든 것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나는 정치란 인간이 하는 것이고 인간이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완벽한 정당도 완벽한 정책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서툴고 부족하고 비도덕적인 인간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좋은 동료들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싸우라고 세금내고 투표하는거다. 그것이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민노당이든 다 똑같다. 열심히 싸워달라. 그런데 당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을 위해서. 얼마 남지않은 머리를 잡아채고 양복단추를 뜯어내면서 감정적으로 싸우는 것도 말리진 않겠다. 그것 역시 당신들이 믿는 바른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방안이라면.

웨스트 윙을 보면서 제일 많이 느끼는 감정은 재미있다,다음에 부럽다. 는 거다. 10년도 더 된 미국의 정치 드라마를 보면서 부러워해야 하는게 지금 한국의 평범한 유권자다. 작년에 나온 대표적 정치 연애드라마 시티홀에서 조국이 신미래한테 대충 이런 말을 한다. '지금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수는 297명이고 그 사람들의 꿈은 다 똑같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나 또한 그 꿈을 꾸고 있다.' 1999년의 웨스트윙과 2009년 시티홀의 차이는 어느 정도 정치 현실의 차이와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꼭 정치인들만의 탓일까. 나는 미국의 공보국장이 하는 일보다 우리나라 대통령 비서실장이 하는 일을 더 모른다. 초등학교 학생회장 선거조차도 그 아이의 스펙을 위한 엄마들끼리의 싸움일 뿐 아이들은 누구네 엄마가 버거킹 햄버거를 사줬는지 누구네 엄마가 롯데리아 햄버거를 사줬는지 이상의 관심은 없다. 이천하고도 십년이 더 지난 지금 70년대의 흑백논리를 내세우며 좌빨운운하는 건 촌스러운 일이라서 헛웃음이 다 나는 일이지만 헛웃음만 흘리고 쿨한 척 하는 우리는 사실 아직도 노친네들의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을 뿐이다. 정치인들이 정책에 관심을 가지려면 먼저 우리가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인들의 자신들의 도덕성을 바로 잡으려면 우리가 그들의 도덕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몇번을 말해도 당연한 이 사실을 무시한다며 나는 10년 후에도 웨스트 윙 1시즌을 보면서 부럽다, 는 생각만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같이 보자. 웨스트 윙. 같이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더라도 이 드라마는 한 국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봐둬야 할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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