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연애할 때의 일이다. 마침 그의 생일 즈음이고 해서 주말에 쉬는 틈을 얻어 그쪽으로 가마 약속을 했다. 약속한 날은 아침 나절부터 고질병인 무릎통증이 동해 걷기가 불편해서 물리치료실에 가서 치료를 받고 파주에서 서울로 갔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복잡한 인도 한복판에서 맹인 한분이 더듬더듬 걷는 걸 사람들이 툭툭 치고 간다. 그냥 지하철타는데까지만 도와드려야지..하면서 지하철을 태워드렸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집까지 데려다드린다 약속을 했다. 그때는 그 분 집이 40분이나 걸리는지 몰랐다. 설마 눈도 불편하신 분이 그 먼 곳에서 혼자 돌아다닐거라고는 생각못했다.
그렇게 왕복 1시간 반정도를 써서 그 분을 데려다드리고, 고속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전화가 왔다. 야근해야해서 할 것 같다고. 마침 오후를 훌쩍 지난 시간이라 나도 내려가봤자 얼굴만 잠깐보고 와야 할 것 같아서 힘빠진 걸음으로 파주로 돌아갔다.그 얘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하자 간도 크단다. 그러다 봉고차에 끌려가면 어쩌냐고. 멍청한건지 순진한건지 모르겠다는 핀잔을 들으면서 차마 사람들에게 하지 못한 얘기가 있는데, 그 맹인이 나를 경계했다는 걸 마지막에 알아차렸단거다. 집 근처 골목까지 가자, 여기까지만 오면 혼자서 찾아갈 수 있으니 그냥 가라고 고맙다고 하는데 그제서야 그 말투와 행동에서 알아차렸다. 내가 한 행동이 위협이 됐다는 걸. 어두운 눈으로 누구도 도와주지 않은 길을 혼자서 찾아가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의도를 알지못하는 누군가의 과잉친절이라는 걸. 내가 불편과 귀찮음을 감수하고 누군가를 돕고있다는 으쓱거림에 빠져 있는 내내, 그는 낯선 여자의 친절을 차마 거절하지 않는 예의와 그 여자에 대한 의심사이에서 갈등했을테지. 그걸 뒤늦게 알아차린 건 그 사람을 의심하지 않은 것보다 더 멍청하고 순진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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