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리기는 하나는 누구 못지않게 느려도 걷는 건 좀 하는데 한 때는 어디서 솔로 20년이면 걸음걸이가 마을버스를 따라잡는다는 속설을 그대로 믿을 정도였다. (한때는 한모씨가 날 성큼걸이로 불렀더랬다.)

빠를 뿐 아니라 걸음걸이가 약간 특이해 착하고 좋은 사람들은 씩씩하고 당당해보인다 그러고 객관적으로 보면 웃기는 그럼 걸음이다. 그 덕분에 날 좀 안다싶은 사람이면 얼굴이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도 날 쉽게 알아보니 인피면구같은 걸 써 정체를 숨겨봤자 소용이 없다. 그러니 뮤직비디오나 영화속 여주인공의 아슬아슬한 변장같은 건 할래야 할수도 없는 것이다.

아무튼 아주 추운 겨울만 아니면 여름에도 더위를 쉬이 타지 않는 편이라 자주 걷곤 하는데, 특히 내가 좋아하는 길이 감만1동과 대연4동에서 볼 수 있는 저 오래된 보도블럭길이다. 초등학교 때 처음 생긴 저 보도블럭의 색있는 부분을 성큼성큼 눌러밟고 가면서 어린다리를 키웠는데 어찌보면 지금의 웃긴 걸음걸이가 된데에는 짧은 다리로 그때 너무 무리를 했던 게 아닌가싶다.  

대연동은 꽤 걷기 좋은 동네다. 부경대로 가는 길목에는 문화회관에서 구름공원을 가로질로 유엔묘지로 들어가 조경을 즐길수도 있고, 유엔묘지에서 빠져나와 시립박물관으로 들어가면 단돈 500원으로 편안한 쇼파에서 티비를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더해, 사람과 유물이 함께 나이들어가는 박물관 특유의 분위기도 즐길 수 있다. 시립박물관을 나와 부경대쪽으로 걸어가다보면 조각공원이 나온다.

길의 왼쪽에 보이는 그곳이 진짜 조각공원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이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줄지어선 카센터들을 만나야 하는데, 꽤 괜찮은 차와 오토바이를 구경하는 즐거움은 있지만 한참 일할 시간에는 특유의 소음때문에 조용한 산책을 즐기기는 힘들다.

학교에 가는 게 아니라면 나는 여기서 발을 돌려 다시 문화회관으로 간다. 문화회관 근처에 음식점에서 배를 채우고 (거기있는 쌈밥집이랑 보쌈집이랑 냉면집이 참 맛있었는데 요즘은 맛이 변해 그 맛이 안난다.) 우리집이 있는 감만동으로 내려가다보면 그때부터는 익숙한 동네의 풍경이다.


낡고 빛바랜 벽들과 익숙한 풍경들을 지나다보면 가끔은 재미있는 것들이 보인다. 저 올챙이 그림이 뭘 뜻하는걸까. 예전에는 상당히 하드고어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가위그림을 그리곤했는데, 이제 그런 그림으로는 안먹히는가보다.  

그러고보니 서울에 와서는 한번도 동네 산책을 나가본 적이 없다. 사육신묘도 수산시장도 가까이 있으니 내 작은 카메라를 들고나가 길을 눈에 익히고 그길에서 새로운 풍경을 담아낼 수도 있었는데 학원에 집만을 오가다보니 나는 아직도 이 동네의 길이 낯설기만 하다. 아직 추위가 완전히 풀어지지 않지만 이제 입춘도 지났으니 달려오는 봄을 맞아 근간에 한번 나가 새길을 걸어봐야겠다.

산책 :: 2006/02/10 15:29 길위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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