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석이는 우리집에 얹혀살고 있는 세 새끼 고양이-달래, 달콩이, 달석이-중 가장 소심한 녀석이다.
다른 녀석들이 동생과 내 발자국소리만 들어도 개처럼 달려오는 데 비해 이 녀석은 의자며 쓰레기통 밑에서 한참 서성거리다가 슬며시 다가온다.

얼마전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집에 떨어졌다. 보일러실에 이름모르고, 얼굴모르고, 몸매모를 고양이가 놓고 간 새끼의 이름은 달래다. 달래처럼 예쁘다고 동생이 지어준 이름인데 이 녀석을 잘 먹이고 잘 키우는 것 같으니 며칠 뒤 고양이 두마리가 뒷마당에 더 떨어졌다.
까맣고 얼룩덜룩한 녀석의 이름은 까만콩처럼 생겼다고 달콩이고, 저기 저녀석은 못생겼다고 제가 싫어하는 남자아이의 이름을 붙여 달석이란다.

달석이는 그래서, 처음부터 꽤 섭섭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낯을 가리는 성격에 달래에게 늘상 먹이를 뺐겨 소심하기까지 한 녀석이지만, 처음 못생겼던 녀석이 크면클수록 이뻐진다고 요즘은 동생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데 그 모습이 짐승에게는 정주면 안된다는 할머니는 못마땅하시다. 태풍오기 전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낳고간 이 세 녀석이 영 마음에 들지않으신 것 같기도 하고... 도둑고양이는 도둑고양이기 마련이라 언젠가 도망간다고 하지만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직업을 타고난 사람도 없듯이 도둑고양이란 것도 없다. 배가 고파 남의 집 쓰레기통을 뒤지는 건 본성이 아니라 본능이다. 이 놈들이 커 우리집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그건 이 녀석들이 도둑고양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갈때가 되서다. 부모들은 언제나 자식이 제 곁에 남아있기를 바라지만 자식이 떠나고야 마는 것처럼, 그러나 부모들이 우리가 떠날거라는 사실때문에 우리에게 사랑을 거두지 않는 것처럼 나는 이 녀석들이 우리집을 떠날때까지 사랑해야 한다.

어릴적 친구에게 삼순이란 이름의 개 한마리를 얻어 (그 친구의 네이밍센스에 축복을...) 옥상에서 키운 적이 있다. 영리하고 여우처럼 예뻐서 정말로 좋아했는데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에 짐승을 사람위에 키우는 게 아니란 소리를 들은 할머니가 팔아버렸다. 집에 돌아와보니 사랑하는 삼순이가 없어져 동생과 나는 밤마다 삼순이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짰다. 그 뒤로 집에서 짐승을 키운적도 없는데다가 나는 그다지 키우고싶지도 않았는데, 할머니 말씀대로 짐승에게 정을 줬다가 정 준 그놈이 떠날 때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삼순이가 떠난지 10년이 넘어 나는 새로 정 줄 무언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돌이켜보면 내 유년시절에 삼순이가 없었다면 동네 오락실을 전전하거나 집에 쳐박혀 만화책만 읽는 은둔형 인간이 (좀 더 이른 시기에) 되었을게 분명하니까.
달석이 :: 2006/10/07 12:57 길위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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