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피해간 죽음이 되돌아온다는 재미있는 소재에 꽤 즐거워했던 데스티네이션은 2와 3를 거치면서 점점 불편해져간다. 그렇다고 영화가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반드시 너를 찾아간다, 그것도 열맞춰서...라는 1,2편의 공식을 진부하게 따라가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때우게 만드는 건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러나 한때 데스티네이션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그 공식이 이제는 불편하다. 우리가 아무렇지않게 그냥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 어느 정도로 잔혹한 죽음을 선사하는지, 네가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는 이 순간에도 사실 너는 지극히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 영화가 이제는 미국인들의 안전에 대한 집착처럼 느껴질정도다.

데스티네이션의 그 존재는 전혀 귀엽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내가 좋아하는 죽음의 존재는 차라리 우리네 저승사자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저승사자가 자신의 실수에 대처하는 방식은 지극히 사랑스럽다. 그는 죽음을 충실히 수행하는 착한 공무원처럼 보인다. 사람을 헷갈려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저승사자는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미 죽어버린 육신이 땅에 묻혀 썩어가고 있을 때, 그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기준에서 그를 좀 더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이승'의 기준으로 좀 더 부유하고 젊은 육신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원하던 사람을 죽이지 못했을 경우는 그에게 좀 더 잔혹한 죽음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복수하는 대신 문책 당할 게 뻔한 저승으로 외롭게 돌아간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대가는 자기가 진다는 이 검은옷의 패션센스를 지겹게 고수하는 어수룩하고 고지식한 작자는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자이지만 그래도 제법 사랑스럽다.

그러나 데스티네이션의 잔혹한 죽음의 방식을 알려주고 그것을 피해간 댓가로 더 잔혹한 형식의 죽음을 선사한다. 수천년, 아니 수억년동안 같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던 그 새끼. 이제 그 일에 신물이 나서 자기 수행물을 가지고 장난 좀 치고싶었나보다. 인간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가장 잘 알고있는 존재가 그 두려움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한번은 실수를 되돌리기 위해서라고 치지만 7년동안 세번이면 지나치지않나? 그 사악한 존재는 먹이를 입안에 넣어 혀로 살살 돌리다 꿀꺽 삼키기 전에 내뱉고 다시 손발로 몇번 가지고 놀다가 잔혹하게 짓뭉개버린다. 녀석은, 지나치게 인간적이다. 자기보다 약하고 작은 생명체의 목숨을 자기가 관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악마적 속성을 녀석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녀석이 싫다. 그것도 졸업을 앞둔 미국의 고등학생만 골라 그짓을 하는 걸 보니 그나이때의 학생들을 가지고 놀아야 흥분하는 변태성욕자이거나 미국이 저승에 미군기지확장사업을 준비하기라도 했나보다.

어쨌든 이것이 파이널이라는 사실이 다행이다. 나는 두 번 다시 저 간악하고 잔혹한 녀석이 누군가의 죽음을 가지고 노는 꼴을 보고싶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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