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남자를 알지못한다.
이 남자의 전성기때 난 잘생긴 남자에 별 관심이 없었고(놀랍지만 정말 그랬다.) 내가 겨우 남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무도 이 남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돌아온 탕아같은 이 남자가 Once Upon A Time In Mexico같은 영화에서 비열하고 추악한 갱의 이미지로 나올 때 내가 눈을 두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보였다.

그러다 나는 씬 시티의 마브를 본다.
그는 살아있는 야수고 인간형의 킹콩이다. 그의 가장 마지막 싸움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서 이뤄줬고, 그의 가장 오래된 싸움은 외로움이었다. 그 외롭고 치열한 그의 싸움을 위로해 준 단 하룻밤의 여신의 복수를 위해 모든 자신을 거는 이 남자가 나는 멋잇고 가련해보였다. 무릇 미녀는 야수를 죽이는 법이다. 모든 고문끝에서도 외로운 자신을 일지 않던 바위같은 남자가 여신의 환영같은 내음앞에서 무너지는 걸 보고 나는 가슴이 아팠다. 나는 마브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미키 루크를 찾았다. 저 단단하고 바스러지기 쉬운 남자를 연기한 사람에 대해 알고싶었다. 그리고 에로틱영화의 고전이라는 나인 하프 위크를 찾게되었다. 나인 하프 위크에 마브는 없었다. 그곳에는 재력과 매력을 모두 가진 존이라는 남자가 있을 뿐이었다. 말쑥한 얼굴에 혼이 빠질 정도의 매력적인 미소를 가진 월스트리트의 황태자말이다. 그러나 존에게도 마브의 외로움이 있더라.
월 스트리트의 고급식당에서 남장을 한 킴 베신저에게 키스를 하고, 그녀의 속옷을 찢고 네 발로 기게 만들고 창녀를 소개시켜주는 파행적 성행위의 존과 하룻밤의 여신을 위해 목숨을 마치는 마브의 순정사이에도 공통점이 있더라.
오직 한 여자를 사랑하지만 바른 사랑의 방식을 몰랐던 서툴고, 외롭고, 강했어야 하는 약한 남자의 순정말이다. 나는 그래서 슬퍼졌다.

이제 미키 루크가 가지고 있는 외로움인 것일까...하고 슬퍼졌다.
어쩌면 그것은 남자라는 족속 전체가 가지고 있는 숙명적인 외로움일 것인가...하니 서러워졌다.

그들이 안으로 꾹꾹 눌러둬야만 했던 약한 외로움이 고개를 쳐들 때 그것을 감추는 방식은 겉멋이다. 존은 멋지고 세련된 옷을 입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옅게 웃었고, 마브는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고 자기보다 멋진 코트를 용납하지 않았다. 존이 자신의 외로움조차 겉멋으로 승화시키며 그것을 감췄다면 마브는 그것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부정했다.

세월의 힘인지, 아니면 캐릭터의 힘이었는지 이 싸움에서 마지막으로 이긴 자는 마브다.

엘리자베스가 떠나는 순간에도 존은 자신의 상처입은 과거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녀앞에서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는 말한다. "50을 세겠어. 돌아와줘." 서툴고 멍청한 방식이지만 아마, 그것이 존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흉터투성이의 몸을 한 강철같은 마브는 철창에서의 마지막 밤에 죽은 여신의 돌아온 (살아있는) 환영앞에 무너진다. 순순히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마브는 이영도식의 표현대로 용기를 버리고 승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속편에서의 존처럼 엘리자베스의 소장품을 모두 사버리는 쓸데없는 돈지랄과 엘리자베스의 모조품과 헛된 낭비를 하면서 외로움만을 뼈져리게 느끼는 비참함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고.)

나는 존과 마브 모두에게 사랑과 연민을 느끼지만 마브를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끔 존의 아름다웠던 미키루크가 그리워질 때, 나는 이전 그의 사진을 본다.
너무 많이 변해버린 얼굴과 달리 그가 한결같이 상기시키는 춥고 외로운 이미지가 생각날 때 말이다.
지금은 겨울이니까.




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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