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고딘의 전작을 꽤 흥미롭게 읽어 나름대로 리마커블한 전략을 구상하기도 했던(지금은 어디갔는지 포스트를 뒤져봐도 없다. 지워졌나보다) 터라 이번에 출판된 보라빛 소가 온다2도 읽어보았다. 특별히 달라진 내용은 없었고 우유팩과 시리얼박스에 넣어 출판했다는 미국의 경우에 비추어보아 책 하나만 덜렁 번역해서 나온 우리나라에서 입소문만으로 이 책이 얼마나 팔릴까도 미심쩍었지만 어리숙한 자녀에게 밥을 떠 먹여주듯 새로운 전략을 어떤 식으로 구상해주어야하는지까지 자세하게 제시해주고 있는 책은 분명 친절했다. 그리고 이런 친절함에 힘입어 나는 드디어 QAF(Queer As Folk)의 끝을 수긍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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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시즌 5로 QAF가 끝났다. 턱선이 조금 더 넓어지고, 눈가에 약간의 주름이 생기긴 했지만 '브라이언'이기에 여전히 아름답고, 또 영원히 아름다울 섹스의 신을 바빌론의 화려한 조명아래 빨간구두를 신기고 남겨둔 채 훨훨 가버렸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제법 훌륭한 끝이었다. 시즌 3시즌 이후로 QAF의 생명은 덤이었다. 퀴어들의 축제는 스톡웰이 선거에서 떨어지는 날 완성됐고, 또 끝났다. 빅 그라시의 삶처럼 남은 것은 축제의 여운이었고, 그 여운동안 스토리는 꾸준히 브라이언의 성장기를 전개해나갔다. 브라이언의 변화는 스토리상으로나 사회적 맥락으로나 필연적이었다.
내 브라이언을 돌려달다는 절규에 보라빛소가 와서 우유곽에 쪽지를 넣어 전했다. 십자모양으로 예쁘게 접힌 쪽지에는 "광고는 죽었다."라고 적혀있었다.
. .광고란 별 볼 일 없는 상품이 무척이나 가치있다고 믿도록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일이다. 브라이언의 직업은 광고쟁이다. 해를 거듭하고 시즌이 지날수록 브라이언의 작업은 힘들어진다. 고객은 줄어들고 경기는 나빠진다고 한다. 회사에서 쫓겨난 브라이언의 새 회사를 차린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그의 창업을 반대했다.
. .바빌론을 인수한 브라이언이 아무리 바빌론을 광고해도 유행에 민감한 게이들의 발길을 바빌론으로 돌리기는 힘들었다. 결국 브라이언이 선택한 전략은 입소문이었다. 그는 hot guy들을 줄세워놓고 바빌론이 그들을 선별해 들여보내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였다. 게이들의 발길은 다시 바빌론으로 향했다. 대세는 입이다. 영상은 영상을, 사람은 사람을 모은다.
. .브라이언에게 무시할 수 없는 경쟁자가 나타난다. 멋진 금발의 매력남은 자신이 피츠버그 최고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그저 바빌론의 스테이지에서 blow job을 받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내 눈에 바빌론의 흔한 고고보이들보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평범한 '멋진 게이'인 그를 브라이언의 가장 큰 적으로 만드는 것은 "가장 완벽한 cock"를 가졌다고 수근거리는 사람들의 입이다.
브라이언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는 한 때 섹시했지만 이제 보톡스를 위해 곗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반쪽 고환을 가진 늙은 게이다, 언젠가는 금발의 화려한 애송이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피터팬은 환상속에서나 피터팬일 수 있다. 애석하지만 브라이언도 우리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광고의 시대와 함께 화려한 브라이언의 시대도 저물었다.
어쩌면 그는 광고회사의 사장으로, 그리고 피츠버그의 게이로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광고 자체는 이미 새로울 것 없이 죽은 상품이지만 브라이언의 고객들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브라이언의 '광고'가 아니라 '브라이언'의 광고니까. 브라이언이 해야 하는 일은 그의 고객들의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객들이 브라이언을 소비하고 있다고, 그의 혁신적이고 아름다운 광고가 자신의 제품을 돋보이게 만들어줄 수 있을거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는 마이클처럼 그가 '브라이언'이라는 이유만으로 영원히 아름다울거라 믿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이 지금까지 모든 시즌에 걸쳐 브라이언이 해온 일이기도하다.
그러나 브라이언의 국지적인 승리가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다. 시즌이 거듭되면 우리는 피터팬을 꿈꾸던 섹스머신의 성장기가 아니라 한때 상당히 섹시했던 어떤 게이의 몰락기를 봐야 할지도 모른다. QAF가 우리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건 환상이고, 환상이 현실과 겹쳐지면서 여운을 줄 수 있는 지금 드라마는 끝나야한다.
안녕, 브라이언. 그리고 안녕, 최고로 화려했던 게이판타지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