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영화가 좋은 영화는 아니다.

시리아나는 훌륭한 영화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14kg이나 살을 찌운 조지클루니를 봐야한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는 아니다. 조지클루니에는 두가지 아픔이 있는데 그 정도로 살을 찌우지 않고는 결코 평범해질 수 없는 외모와 대중이 조지클루니의 영화에 바라는 것과 조지클루니 자신이 영화에 바라는 것 사이의 간극이다. 인물밝히는 처자의 개인적 감상은 여기서 그치고...

미국에게 장점이 있다면 국가가 떠벌리고 다니는 국익이라는 것과 상반되는 주제의 영화가 나와도 성공할 수 있다는 표현의 자유다. (물론 그것도 9.11이 한참 지난 다음 부시행정부의 삽질에 당할만큼 당한 사람들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지만) 시리아나는 중동을 둘러싼 미국의 이권다툼과 거대권력에 대항하려는 나약한 개인 사이의 전쟁을 차갑고 사실적인 시각으로 보여준다.

나시르 왕자는 긍정적인 개혁파로 나온다. 남녀평등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국민의 참정권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등 조국의 민주화를 꾀하면서 미국의 이권침탈을 억제하고 조국을 보다 부유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미국 대신 그는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중국의 손을 들어주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브라이언은 그의 개혁적인 성향에 희망을 품고 그가 곧 중동 판도를 바꿀 대단한 인물이라며 흥분하지만 결국 미국주둔을 반대하는 나시르왕자는 미국에 의해 암살당하고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그의 아우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늙은 CIA요원 밥은 나시르왕자의 암살을 의뢰받지만 실패하고 조직에게서까지 버림받는다. 그리고 누가 나시르 왕자의 죽음을 원했는지 파헤친 후 그의 암살을 막으러 가지만 실패하다.

변호사 베넷은 코넥스사와 킬린과의 합병과정에서 일어난 부정을 조사하러 다니는 변호사다. 코넥스사는 뒤로는 나시르 왕자의 죽음을 의로하고 앞으로는 석유채굴권을 획득한 킬린과의 합병을 꾀하면서 이 합병의 최고의 수혜자는 국민 여러분이 될 것이라고 선전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당연한 명제에 대한 미국의 변명이 나온다. 부패가 우리를 부유하게 하고 부패가 우리를 따뜻하게 한다고. 영화속에서 정의롭고 개혁적 의지를 가진 인물들은 죽거나 부패한 권력에 굴북한다.

이런 냉혹한 현실에서 영화가 던져주는 희망은 이주해온 파키스탄 노동자 와심의 자살폭탄테러다. 와심이 자살테러단의 일환이 되는 과정에서부터 코넥스와 칼린의 합병식이 이루어지는 배를 향해 폭탄이 든 배를 타고 평안한 표정으로 달려가는 와심의 표정과 죽음이 내게 안식을 가져온다는 그의 유언이 담긴 비디오를 보여주며 영화는 자살테러라는 끔찍한 저항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하며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준다.

이것은 중동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한반도를 둘렀나 미국과 소련의 이권다툼에서 분단됐었고, 친미적 성향의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지명당했다. 개혁적인 인물들이나 민주주의를 원하는 인물들은 제거당하거나 고문당하거나 전향을 강요받았다. 어떤 이는 죽었고, 어떤 이는 굴복했다. 그리고 얼마전 학원에서 나는 모 선생에게 '여러분들도 카리스마적 민족 지도자가 나와 현실을 타개해주기를 바라지 않습니까?'라는 농담이라면 끔찍하고 진담이라면 더 끔찍한 말을 들었다. (나는 이제 절대로 그 선생의 수업은 듣지않겠다) 한 개인이 국가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에 찬 말과 함께 자신이 그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야망찬 확언은 구역질나는 혐오를 일으켰다. 아직도 이 나라에는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구나, 아직도 개인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의 권력욕을 저렇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저런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나 국민이 아니라 백성일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통탄의 한숨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나시르왕자같은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시르 왕자는 실패했고, 내 생각에 그는 결국 부패에 흡수되는 베냇이다. 아니, 어쩌면 부패가 자신을 불러주길 원하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제2의 이승만과 박정희를 꿈꾸며 대한민국에 왕정을 수립하려는 복벽주의자들을 싫어한다. 내가 이 영화를 긍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극단적인 행태긴 하지만 민중에 의한 변화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권력에 대항하지 못한다. 그러나 민중은 그럴 수 있다. 나는 가난하고 힘없는 와심이다. 그래서 나는 또다른 나와 함께 그들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다고 밎는다. 물론 부패가 나를 부를지도 모르지만 권력과 부패가 맞닿아있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를 따뜻하게 만든다면 나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모든 우리가 부패하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그때의 부패를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쓰일 것 같다.

시리아나는 드물게 관객에게 생각을 강요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영화를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느낄수도 없다. 우리는 이 영화의 스포일러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영화의 줄거리를 다 알고가도 그것을 이해하기 힘들테니까. 좀 더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는 걸프전에서부터 지금까지 중동을 둘러싼 미국의 이권다툼과 중동의 현실에 대해 많이 알수록 좋다. 나는 영화를 보고나서도 각종 사이트를 찾으며 이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는 교훈을 알아내려고 노력해야했고 아직도 이 영화를 정확히 이해했는지에 대한 자신이 없다. 물론 전적으로 그것은 내 얕은 지식 때문이었고, 박식한 관객에게 이런 노력은 별 필요없을지도 모르겠지만.

open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