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농을 바라보면서 눈을 빛낸다. 오늘 어수선하게 어지럽혀진 저 옷들을 모두 꺼내 딱 보기만 해도 오늘 입을 옷의 영감이 반짝이도록 완벽하게 정리하고 말리라, 는 사명에 불탄다. 옷을 보두 꺼내보니 없는 줄 알았던 예쁜 옷들이 꽤 눈에 띄어 기분이 좋다. 이런 걸 가지고 왜 그렇게 옷없다는 타령을 했던가! 그 옷들을 차곡차곡 예쁘게 개어 서랍에 넣고 옷걸이에 걸면서 콧노래도 부른다. 차곡차곡 정리되는 옷들때문에 힘든줄도 모르고 마음이 흥겹다.

몇시간이 지난다. 옷장과 바닥을 번갈아보니 정리되어있는 옷보다 정리되지 않은 옷이 더 많다. 처음의 흥겹던 마음도 이제 슬슬 지쳐간다. 오늘 안에 다 끝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옷장정리에 몇날며칠을 보낼수도 없는 노릇이다. 처음에는 대견한 듯 "잘해봐."하시던 엄마도 애가 쓸데없이 일만 벌려놨다고 성화시다. 오늘 안에는 이 일을 끝마쳐야 하는데 시간도 없고 여력도 없다. 그렇다고 누구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몇시간이 더 지난다. 마음은 급하다. 눈은 침침하고 따가워지고 한참을 일어났다 앉았다해서 관절에도 무리가 온 듯하다. 엄마는 애가 쓸데없이 공부는 안하고 딴 짓이나 한다고 토라져 부엌으로 가 버렸다. 동생이 오더니 "또 방 어지럽혔어?!"라고 한마디한다. 일생을 가도 방 한 번 안닦는 놈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 왠지 억울하다. 남아있는 옷을 아무렇게나 개어 마구 쑤셔넣는다. 점점 옷장은 볼품없어지지만 이제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래서 결국은 처음의 예쁜 옷들은 장농 안쪽으로 들어가고 밖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 추리닝이나 늘어진 티셔츠, 유행지난 옷들만 남게된다. 처음의 상태와 다를게 없다.

이것이 얼마전부터 우리가 보아온, 소위 개혁이란 것의 과정이다.

옷장정리 :: 2006/10/13 20:05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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