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주쯤에 친구 녀석 하나가 놀러온단다. 그러면서 묻는 말이' 거기 뭐 있어?'
그러고보면 여기 산지 반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여기 뭐 있는지 모르겠다. 일단 술집은 많고, 그거면 그 녀석은 만족할 거 같은데..내가 술을 잘 먹는 편이 아니라서 어떤 술집이 맛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집에서 치킨 하나 시켜놓고 맥주 한 병 까서 윌 앤 그레이스 보면서 먹는 게 제일 맛있는 거 같은데..그리고 걸어서 5분 거리에 롯데시네마가 있고 거기서 다시 걸어서 3분 거리에 CGV가 있다. 그리고 걸어서 7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은 작지만 새로 지어서 깨끗하고 나처럼 게으른 사람을 위한 무인반납기와 무인도서예약기가 따로 있어 편하다. 일주일에 세권 정도 책을 빌리는 요즘은 서고를 뒤적거리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신간에서 제목이랑 표지보고 땡기는 걸로 골라 세권 집어온다. 어떤 책은 재미있고 어떤 책은 표지만 번드르르하다. 예전 살던 집 근처에도 대학 도서관이 있어 지역주민 회원증을 끊어 책을 빌리곤 했는데 도서관까지 거리는 짧아도 학교자체가 워낙 고바위라 거기까지 올라가는 일이 힘들어 잘 안빌렸었다. 근데 이곳은 산이 거의 없는 동네라 어디 나다니기가 참 수월하다.
이 동네에 택시는 많고 버스는 없다. 살다살다 이 동네처럼 버스 안다니는 동네를 못봤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배웠는데 사람이 오면 지나갈때까지 자전거를 멈추고 강아지가 와도 멈춰서고 벗꽃잎이 날려도 어어어어~~하면서 멈춰서다보니 걷는게 자전거 타는 것보다 빠르다. 그래도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가는 건 공중부양 하는것처럼 둥실둥실 뜬 기분이라 신기하기도 해서 종종 타고 나간다.
그리고 물리치료를 아주 잘해주는 병원이 있다. 지금까지 가본 정형외과 물리치료실 중에 제일 마음에 든다. 보통은 한 곳만 치료를 해주는데 이곳은 한 번 가면 어깨, 허리, 다리까지 다 찜질해주고 치료해준다. 적당히 치료기만 대고 있는 게 아니라 어디가 어떻게 안좋고, 어떤 재활운동을 해야 하는지 상세히 설명을 해주는데 잘 모르겠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다. 가끔은 말하는 걸 녹음시켜와 집에서 공부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집에와서 재활운동을 열심히 한다. 나는 척추도 안좋고 어깨도 안좋고 목도 안좋고 무릎은 더 안좋다고 혼났다. 운동 좀 하라고. 그래서 요가를 다니고 있는데 당장 나한테는 요가보다 재활운동이 더 낫다고 하니 고민이다. 요가를 끊어야 하나. 그러면 3년안에 무릎을 펴고 손끝을 발에 닿게 하겠다는 목표는 어떻게 하나. 그러고보니 요가가 공짜라는 것도 좋다. 공짜로 요가를 배우는 곳은 도서관 바로 옆건물이다. 같이 요가를 배우는 아줌마 하나는 우리 바로 옆 아파트에 사는데 걸어서 10분도 안되는 그 거리가 너무 멀다며 동사무소로 요가수업을 옮길까 생각중이란다. 이 동네 사람들은 정말 걷는 걸 싫어한다.
처음에는 좀 막막한 시골동네였지만 막상 와서 살아보니 살만하다. 시골인데 야채값이 많이 비싸고, 맥도날드도 KFC도 버거킹!도 없고, 문화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괜찮다. 어떤 사람들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가서 외롭고 쓸쓸하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어차피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해서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혼자 있다고 무섭거나 외로움을 느끼는 성격도 아니다. 마음 맞지 않는 상대들과 얼굴 마주보면서 억지로 웃고 억지로 공감대를 만들어야 할 때는 많이 외로웠지만 지금은 편안하다.
가끔 한인씨랑 축구보고 난 다음 막국수 먹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이재모피자랑 사해방 만두랑 먹자골목 당면이랑 단골 커피숍의 커피맛이랑 마이 소울푸드 국밥이랑 그런 먹거리들이 그립기도 하다. 그래도 이곳도 살만한 동네다. 내 낡은 아파트는 내가 있는 집이니 당연히 지저분하고 냉장고에는 반찬보다 술이 많고 택배인 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보면 교회다니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인게 짜증날때도 있고, 상위에 놓여있으면 잘 먹지도 않았던 엄마표 나물이랑 반찬들이 너무너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세상에서 사려고 하면 제일 돈 아깝고 하려고 하면 제일 힘든 게 나물인 거 같다) 어제 먹다남긴 치킨에 맥주로 끼니를 때워도 내가 사는 내 집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인 거 같다.
우리동네엔 내가 있고, 날 보러 오는 사람들에겐 그걸로 충분할거라 믿는다. 그러니까 놀러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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