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간 유니세프에 매달 자동이체로 후원하고 있던 몇푼의 돈을 후원취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적은 돈이 많은 아이들을 살린다는 걸 알고있다. 약 한 알을 먹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 굶어죽고가고 있는 아이들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수없이 많다는 걸 알고있다. 하지만, 이전까지 내게 밖에서 두 세끼 식사를 하지 않으면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던 돈이(그렇다고 식사를 하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지금 내 한달 용돈의 10%가 되니까 사정이 달라진다.
물론 후원을 계속한다 하더라도 내가 굶어죽을 일은 없을거다. 난 여전히 잘 얻어먹고, 오동통하게 살찔테고 혹, 내가 용돈이 부족하다는 걸 알아차리면 엄마는 예전보다 더 살뜰히 날 챙기며 단 돈 얼마라도 내 주머니에 찔러주려 할거니까. 나는 언제 돈이 빠져나가는지도 몰랐던 통장을 가끔 보면서 자신이 너그럽고 착한 후원자이며 누군가의 생명을 구했다는 뿌듯한 자긍심을 느낄수도 있을거다. 그러나 그 뿌듯한 자긍심을 위해 희생하는 건 내가 아니다. 나는 희생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히려 나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희생위에서 살아왔다. 타고난 약한 몸과(몸에 어울리지 않는 식성과) 고집을 지금까지 지키면서 말마따나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곱게 자라온 건, 누군가의 거친 손이 날 키워왔다는 소리다. 나는 착하고 너그러운 인간일 수 있었다. 우리집이 가난할 때도 어린 내 용돈은 또래보다 풍족했고, 나는 친구들에게 먹거리를 사줄 수 있을 정도로 풍족했다. 돈에 찌들어 본 적도, 돈이 없어 힘겨운 적도 없었다. 먹고싶은 게 있으면 한 달 안에 먹을 수 있었고,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3년안에 가질 수 있었고, 끝내 가질 수 없는 것은 욕심내지 않았다. 비슷비슷하게 사는 친구들에게 가끔 돈 문제로 엄살을 부리기도 했지만 꾼 돈을 떼먹은 적도 없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돈을 꾸지도 않았던 나는 어쨌든 귀하게 자란 티가 나는 어린애였다.
머리가 조금 여물어, 세상에 눈을 돌리게됐을 때. 나는 살기좋은 물 속에서 살며 오염된 물을 개탄하는 물고기들을 흘겨보았지만 더러워진 몸으로 흙탕물속에 들어가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물을 정화시키는 물고기가 되진 못했다. 나는 더러운 물속에 누군가가 만들어준 보호막속에 들어앉아있었다.
그래서 오늘 후원준단사유로 '형편상 후원이 부담스러우므로'를 선택할 때 쪽팔리더라. 쪽팔려서 나는, 기타내용/하실말씀에 [미안하다. 이전의 적었던 이 돈이 이제 나에게 큰 돈이 되었다. 이 다음에 꼭 후원회원이 될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추운겨울에 힘내시고, 복 많이 받으시]란 내용의 글을 덧붙였다. 확인 버튼을 누르자, 사이트 오류가 났다.
화가 났다. 그까짓 돈 얼마된다고 그냥 내고말지 싶더라. 그러나 처음 결심할 때와 같이 생각했다. 내 깨끗함은 결국 내 주위사람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거라고. 더욱이 이젠 그게 '그까짓' 돈이 아니다. 유니세프 전화번호를 메모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중단한다는 전화를 걸테다. 그때는 지금보다 좀 더 쪽팔리겠지.
나는 오늘 몇시간 전보다 더 인색한 사람이 되었고,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고, 조금 더 순수와 순진에서 멀어졌다. 나는 그걸 인정하기로 했다. 아마 이 돈으로 나는 약간은 고급스러운 식사와 좋은 커피와 거기에 곁들여 케잌을 먹을 수 있을거다. 누군가의 목숨에 비하면 얼마나 하찮고 저열한 짓인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있다. 미식과 함께하는 쾌락을 포기하지않는다. 내가 얼마간의 양심이라도 있는 척 하지 않는 대신, 좀 더 더러워지는 대신 내 주변 사람은 그만큼의 여유를 얻을테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나도 얼마정도는 더 여유있게 살 수 있을테다. 그러니까 해야지. 다시 말하지만 나는 희생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혁명가도 성직자도 될 수 없다. 가끔 시간이 남아돌 때 이 부조리한 세상과 힘겹게 살고죽는 사람들에 대해 슬퍼하지만, 그 조차도 곧 잊어버리는 속물이다.
지금이야 부끄러운 마음에 자책하고 슬퍼하지만 얼마지나지않아 이 마음조차 잊을것이다. 그러니까 기록해야지. 언젠가 내 여유에서 나를 비롯한 누군가를 희생하지 않아도 선의를 보일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이 부끄러움을 잊지 않기위해. 내 곳간에서 약간의 인심이라도 퍼줄 줄 아는 사람이 되기위해 오늘을, 이 마음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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