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서생부터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르기까지 게이영화의 긴 여정이었다. 망명높은 사대부집안의 장손이자 조선최고의 문장가. 동생 다리가 부러지는데도 '저들이 그르다고해서 저까지 그러면 되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옳지 않은 일에는 문장을 팔지 않으려하는 꼬장꼬장한 딸깍발이 기질 (사실은 가문의 압력과 혹여 동생처럼 경을 치르지나 않을까하는 소심함 사이에서의 갈등을 권력의 무상함과 선비된 자의 마땅한 도리라는 명목으로 감추려는 것 뿐이다.)의 윤서라는 작자가 동인지 출간의 가장 중요한 요소 "궁하고 꼴리면 자작이라도 해야지"를 깨닫고 추월색이라는 필명으로 난잡한 책을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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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RPS의 비극적 종말이 어떤지를 몸으로 깨닫고 시껍한 다음,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성정체성이 사실은 게이였다는 걸 알게 되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는 윤서가 소울메이트이자 새로운 연정의 주인 광헌에게 "의금부에서 그대가 날 때릴때마다 심하게 흥분했어. 베이비~"하고 고백하는 부분과 "저 사람 죽으면 나도 크게 상심하여 무슨 말 할지 모르오."라며 광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조내시에게 협박의 방식으로 커밍아웃하는 부분이다.
결국 가장 불쌍하게 된 것은 왕궁에 거주하는 (혹은 했던) 이성애자 3인방. 누구는 여자를 위해 땅콩까지 떼고와서 전부치고 보디가드에 뻐꾸기노릇까지 했는데 "개미 한 마리 잡지 못했을 것 같은 비리비리한 서생의 벌을 후려지는 당당한 기세"에 눌려 결국 여자의 마음과 몸이 함께 떠나가는 걸 보고 있어야만 했고, 목숨을 걸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여자의 비밀은 "사랑한다 말하면 살려준다는데 어찌 사랑한다 말하겠습니까. 다만 저세상에서 다시만나..."하고 나불대며 목숨을 구걸하는 게이때문에 다 들통나버렸다.
정빈과 왕은 그 뒤로 어찌됐는지 모르나 부부클리닉, 전쟁과 사랑의 합리적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 달뒤 다시만나 이혼하거나, 정빈의 몸매와 얼굴이 아름다울 때까지만 왕이 약자로 남아있을 것 같다.
한석규의 윤서라는 캐릭터는 어찌보면 꽤 재수없는 인물이지만 최근에 나온 영화중에 이토록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캐릭터가 없었기 때문에 용서해준다. 그는 최고의 문장가로 평가받고 싶은 욕망과 최고의 선비로 보이고싶은 욕망, 그리고 뭐꼴리는대로 행동하는 욕망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않고 끝까지 쟁취한다.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다.
더구나 한석규의 다음 영화 동행도 동인삘이 물씬 풍기기 때문에 앞으로 이 사람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그래. 끝까지 가라. 기왕이면 화끈하게..
덧: 같이 본 사람이 사촌오빠였기 때문에 예의상 '정빈과 윤서가 너무 안됐지뭐야. 어쩌고 저쩌고 나불랑'했는데 이 인간이 대뜸 그런다.
"한석규는 동인지 만든다고 정빈 생각할 정신도 없을 것 같은데.."
역시 피는 물보다 강하다. 내 이 인간이 왕의 남자 3번봤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