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었다. 많이 앓았다. 앓으면서 친구에게 감기가 옮으면 안된다, 고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몸이 사시나무떨듯 떨렸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알람을 맞췄지만 새벽에 일어나질 못했다. 7시에 깨어 얼굴에 물만 묻히고 모자를 눌러쓴 다음 해운대로 향했다. 표를 구해야했다. 나는 가슴에 네모난 목걸이 달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이래서 올해 영화제는 포기하려고 했는데...

밤새 고열로 앓아 영화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두시간 남짓한 수면 뒤 맨 앞자리에 앉아 관람한 영화가 눈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내게 베니스 영화제 초청작이니 칸 영화제 경쟁부문이니 하는 영화들은 영 맞질 않는다는거다. 내 친구 강양은 아카데미를 제외한 영화제에서 상받은 영화는 보지 않는다는 제법 명쾌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땐 그 이야기를 듣고 깔깔대며 웃어넘겼는데 지금은 그 말이 진짜로 와닿는다. 등장인물이 몇명이었는지 기억도 못할 영화에 게스트들이 들어오자 관객들은 잘도 질문을 해댔다. 영화보다 그렇게 질문할 수 있는 관객들에 감탄했다. 그러고보니 나, 2년전만 해도 '자본당선언'같은 영화를 열심히 감상했더랬지.

이제는'영상미와 작품성추구', '평론가들 극찬', '광활한 대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간본성의 탐구'이란 문구가 들어간 영화보다 '보다 대중에게 친밀히 다가간 작가주의 감독의 변신', '춤과 노래의 흥겨운 향연' 같은 문구가 훨씬 땡긴다. 늙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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