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정말 중요한 기능은 전시되는 것이다. 꽂혀 있는 것. 왕궁의 근위병처럼, 놀이동산의 꽃시계처럼, 책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히 기능하고 있다. 전시!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목적이며 숨겨진 (핵심)기능이다. 대부분의 책은 자신의 전 생애를 책꽂이에서 보내고 그것으로 제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의연하다. 전시가 책의 숨겨진 핵심 기능이라는 인식에 다다르면 홀연 많은 문제가 해명된다. 정보도 풍부하고 접근도 편리한 전자책(e-북), 나오기만 하면 종이책 장사들은 파리 날리게 되리라며 호언장담하던 그 전자책이 잘 안 팔리는 이유, 바로 그 전시의 기능이 없어서다.
호화로운 장정과 만만찮은 두께로 뭇 책들을 압도하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푸쉬킨 전집』은 바로 그 '핵심 기능'에 충실하다. 한마디로, 꽂아놓으면 폼 나는 것이다. 손님이라도 와주면 더 좋다. 주인의 성은을 입었던 안 입었든 그 책들은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능히 그 값을 한다. 그러나 첨단 문명의 총화, 전자책으로는 폼을 잡을 수 없다.

본문 58~59

[oyb|left|8972752282]본문의 김영하의 말처럼 책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전시되는 것이라면, 그리고 전시의 기능이 다분히 폼에 연관된 것이라면, 이 책은 폼의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뽀대의 측면에서는 실격이다. 문학동아리의 한해 글모음집처럼 보이는 샛노란색의 바탕에 실핀으로 짜집기 된 포스트잇이라는 타이포그래피의 표지는 양장본에 화려한 문양을 갖춘 요즘 책들에 비하면 지나치게 수수해보인다. 처음 외대 도서관에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오래된 책의 표지가 떨어져나가 도서관측에서 임의로 만든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폼에게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 다른 것, 그러니까 '속멋'이라는 게 있다면 이 책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꽤 폼나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만약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그가 손에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과 충분히 즐거운 대화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그건 지하철에서 서울역 플랫폼에서 맥심을 읽고 있는 군바리를 볼 때나 비디오가게에서 주성치의 홍콩마스크를 빌려가는 남자를 볼 때 느끼는 동질감 같은 것일수도 있겠다. 그들이라면 재치와 솔직함을 동시에 제공해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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