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만해도 나한테 디워는 재미있어보이긴 한데 취향은 아닌 것 같고, 보고싶지는 않지만 어쩐지 (심형래가 불쌍해서) 봐줘야 할 영화였다. 디워는 어린시절 내게 웃음을 주었던(심지어 난 그가 잘생겼다고까지 생각했었다) 연예인이 고생해서 만든 영화였을 뿐이다.

그건, 얼마전 이경규가 복면달호를 가지고 나왔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이경규와 심형래.
둘 다 개그맨 출신으로 영화를 꿈으로 삼고사는 사람들이다. 충무로의 지지를 받지못한 건 심형래보다는 이경규가 더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형래가 개그맨출신으로 충무로의 천대를 받은 영화감독이라는 이름으로 관객의 관심을 끌었다면 이경규는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영화라는 이유로 영화가 폄훼당할 걸 두려워했고 심지어 주연배우에게 자신이 제작자라는 걸 숨기고 싶어했다. 평론가는 물론이거니와 같은 개그맨들조차 그의 꿈을 무시했다. 복수혈전이라는 영화의 실패는 그가 살면서 겪은 가장 뼈아픈 경험이었겠지만 대외적으로는 다른 개그맨들의 남까대기 개그의 소재일 뿐이었다. 그가 새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그리고 흥행에 실패하면 개그계를 은퇴하겠다는 짐짓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을 때조차 그를 진지하게 바라보지는 않았다.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비판까지 있었다. 복면달호는 161만의 관객선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이경규는 다음에도 영화를 제작할거라고 한다. 어쨌든 영화가 그의 열정이라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각주:1]

심형래가 이경규와 다른 건 그가 개그계를 완전히 떠나 괴수영화라는 장르 하나에만 오랫동안 매진해왔다는 사실, 한국보다 더 넓은 세계시장을 노리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경규가 그동안 개그계에서 '규라인'이라는 말까지 등장시키며 나름 하나의 입지를 다져온 것에 비해 심형래는 용가리의 대참패에도 불구하고 포기않고 같은 파충류류(?)의 괴수영화를 들고나왔다는 것도 이경규보다 그를 대단하게 보이게 하는데 한몫했을거다. 말 그대로 역경을 딛고 일어난 영웅아닌가.

99년 신지식인이란 거창한 칭호를 얻고 티비를 비롯한 방송매체의 수많은 환호에도 불구하고 용가리가 망했을 때 나는 그가 다시는 영화판에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러나 심형래는 쇼박스라는 거대한 배급사를 통해 개봉관 500개를 잡고 돌아왔다. 개봉1주일도 안돼 300만의 관객몰이를 한 심형래는 잘난척하고 거들먹거리는 충무로의 진성귀족들 사이에서 꿋꿋히 살아남아 자신의 꿈을 성취한 평민영웅이 되었다. 아직은 화려한 휴가가 약간 앞서있긴 하지만 그동안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충무로는 심형래에게 깨갱소리도 못하게됐단 말이다.

여기까지는 심형래 개인에게나, 그리고 트랜스포머나 캐러비안의 해적 등 빠방한 외화에 밀려 기를 펴지 못했던 한국영화계에나 축복받을 일이다. 그러나 점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심형래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심형래라는 이름이 디워폐인들의 힘을 입어 권력화되고 있다. 그동안 심형래를 핍박했다는 충무로는 신데렐라를 구박했던 계모와 언니들이 당연히 겪어야했던 형벌인지 디워폐인들의 비난의 집중포화(이 표현밖에 생각이 안난다)를 받고있고 심지어 디워를 별로라고 평하는 네티즌들마저 '니가 뭔데 함부로 영화를 평가하느냐?'라는 비난을 듣고있다.

허지웅씨의 블로그는 한때 악플로 도배가 되어 아예 리플이 금지되었고 지금도 부모욕등이 적힌 메일이 스팸메일을 압도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한다. 이송희일감독의 홈페이지는 초토화가 됐고, 스스로 심빠를 자처하는 박형준씨의 블로그조차 허지웅씨 블로그 테러사건과 더불어 디워폐인들의 자제를 요하는 글을 적었다가 인신공격적인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

내생각은 이렇다. 평론이란 어떤 사회적,문화적,역사적 현상에 대해 하나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논하는 것이다. 기준의 잣대는 명확하고 치우침이 없어야겠지만 잣대를 세우는 것이 인간인만큼 평론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영화와같은 문화평론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좋았다, 나빴다가 우선일 수밖에 없는거다. 어떤 사람에게는 디워가 7000원이 아깝지 않은 영화일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피씨방에서 야간정액하는 게 나을 영화일수도 있다. 그건 개인의 취향일 뿐이고 개인적인 취향에 나는 재미있게 본 영화가 너한테는 쓰레기라니 그럼 너는 높고 나는 썩었냐, 는 적대적 반응은 어울리지 않는다. 디워폐인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이송희일의 예만 들어보더라도 그 말투가 공격적일 정도로 직설적이긴 했지만 나름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독설과 욕설의 차이는 인정해 줘야한다.

거기다 심형래가 아무리 그 영화를 찍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그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 (혹시라도)슈퍼주니어가 죽을 고생을 꽃미남연쇄테러사건을 찍었다고하더라도, 그리고 이경규가 설사 개그판을 떠난다하더라도 우리에게 영화를 봐야 할 의무가 생기진 않는 것처럼 말이다.

  1. 무릎팍도사에서 모든 사람들의 만류를 무릎쓰고 영화를 만든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개그맨은 나의 직업이고 영화는 내 꿈이다."라고 대답했다. 자기 역량의 부족함을 알기에 제작자가 되었지만 언젠가 감독이 되어 자기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디 워 :: 2007/08/06 21:15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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